트럼프가 초래한 보호무역주의 …’세계화 재편’ 촉발할 것

16.12.2024

트럼프가 초래한 보호무역주의 …’세계화 재편’ 촉발할 것

제17회 세계정책콘퍼런스 … 석학들이 본 무역환경

« 지금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. 모두가 아는 ‘게임의 법칙’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다. » 제17회 세계정책콘퍼런스(WPC)가 열린 지난 13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파크하얏트. 이곳에 모인 세계 석학들은 « 기존의 통상 질서는 끝났다 »고 입을 모았다. 국제사회는 이제 기존 규칙들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.
불확실성을 키운 직접적 원인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우선적으로 지목됐다.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선거운동 기간 10~20%의 보편관세와 중국에 대한 60% 이상의 고율관세 적용을 공약한 바 있다.
빈센트 코엔 경제협력개발기구(OECD) 경제검토국 국가분석실장은 « (트럼프 당선 이후) 세계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급격히 증가했다 »며 « 많은 사람이 무역전쟁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,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 »고 밝혔다.
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는 국제사회를 ‘탈세계화(de-globalization)’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. 그러나 이날 세션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, 즉 ‘재세계화(re-globalization·세계화의 재편)’가 촉진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. 피에르 자케 프랑스 ENPC대 교수는 « 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해 각국은 디리스킹(de-risking·위험 축소)에 나섰다 »고 밝혔다.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추며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다. 자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디리스킹 전략은 역설적으로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. 보호주의가 심해질수록 해외 시장의 폐쇄성을 우려한 기업들이 현지 생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. 즉 디리스킹 전략이 탈세계화 흐름으로 귀결되는 대신,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.
다만 이러한 재세계화를 향한 상호 의존성은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경제를 무기화하려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. 스즈키 가즈토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« 국가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상호 의존성을 협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 »며 « 한 국가가 상호 의존 관계에서 홀로 배제될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 »이라고 지적했다. 예컨대 서방사회의 대(對)러시아 경제 제재는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상호 의존성을 무기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.
이어 스즈키 교수는 « 앞으로의 세계화는 ‘지경학(geo-economics)’이라는 새로운 틀로 정의될 것 »이라며 « 경제적 논리보다 지리적 요인이 더 중요해질 것 »이라고 강조했다. 과거에는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가 간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면, 이제는 지리적 위치가 경제 정책의 전략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.
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새로운 세계화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. 자케 교수는 « 세계화는 단순히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, 연구 협력, 전염병 대응 등 인류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 »이라고 설명했다.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서도 개별 국가의 노력보다는 세계적 공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. 앞으로 한국과 같은 중견 국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. 자케 교수는 « 세계는 다극 체제(multi-polarity)로 전환되고 있다 »며 « 중견 국가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 »고 말했다.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« 중견국을 포함해 같은 뜻을 가진 국가들이 협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 »며 « 미국이 세계무역기구(WTO) 개혁을 통해 다자간 무역 거버넌스를 활성화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 »고 촉구했다.
한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. 코엔 실장은 « 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들은 에너지 보조금 문제로 인해 공공부채가 심각한 수준 »이라며 « 재정 압박 속에서도 고령화 사회 대응,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국방비 증가 등 지출이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 »고 말했다. 장피에르 카베스탕 홍콩 침례대 교수는 « 청년 세대를 위한 기회 창출이 중요하다 »고 강조했다.
WPC는 국제 관계 싱크탱크인 ‘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(IFRI)’가 주최하는 콘퍼런스다. IFRI는 프랑스 외교부 산하 ‘분석 및 예측센터’ 등을 지휘한 티에리 드 몽브리알 회장이 이끌고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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